삼국시대를 통일하고 신라를 다스린 56명의 왕들 중 현재까지 파악된 왕들의 무덤-경주대릉원, 문무대왕릉, 경순왕릉, 원순왕릉-에 대해 소개합니다.
1. 대릉원
경주 황남동에 가면 마치 산과 같이 큰 능들이 들판에 산재해 있는데 이곳이 바로 대릉원인데 23기의 무덤이 모여있습니다. 신라는 삼국시대 최후의 승자이기에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왕들의 무덤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나 많은 왕릉의 주인이 100% 확인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역대 56명의 왕들 중 37명의 능이 확인되거나 추정되고 있고 나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신라 초기의 왕들의 무덤이 많이 모여 있습니다. 이곳의 대표적인 고분은 미추왕릉, 천마총, 황남대총입니다. 미추왕릉은 신라 제13대 왕의 무덤으로 최초의 김 씨 성을 가진 왕입니다. 23년간 제위 하는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백제의 침입을 물리쳤고 농업을 장려하였다고 합니다. 천마총은 22대 진흥왕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1973년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는데 당시까지 발굴 조사된 고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거의 원형에 가까운 고분이어서 신라의 대형 고분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었습니다. 발굴 조사 결과 15,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하늘을 나는 말의 그림이 그려진 말다래가 출토되어 천마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황남대총은 1973년에 발굴조사하였는데 황남동에 소재한 신라 최대의 고분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발굴 당시 57,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된 황남대총은 남북으로 두 개의 무덤이 서로 맞붙어 있는데 남쪽 무덤에서 남자의 뼈와 금동관 무기위주의 유물이 나왔고, 북쪽 무덤에서는 금관을 비롯한 '부인대'라는 여자 허리띠와 팔찌, 목걸이 등 장신구가 발견되어 남녀의 무덤이나 부부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주인공들은 화려한 장신구들로 치장하고 있어서 신라 초기의 왕릉으로 보이며 신라 제17대 내물왕과 제18대 실성왕 제19대 눌지왕 중의 한 명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2. 문무대왕릉
경주시내에서 동해를 향해 달리다가 문무대왕릉면 봉길리 바다를 접하는데 갈매기들이 차지한 바위섬 하나가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수중왕릉인 문무대왕릉입니다. 신라 제30대 임금인 문무왕은 고구려와 백제를 평정하고 당나라의 세력을 몰아내어 삼국통일을 이룩한 왕입니다. 왕은 자신이 죽으면 불교법식에 따라 화장한 뒤 유골을 동해 바다에 묻으면 용이 되어 왜구의 침입을 막겠다고 유언을 남깁니다. 유언에 따라 화장한 유골을 동해의 입구인 큰 바위 위에서 장사를 지냈는데 이 바위가 대왕암입니다. 사적 제158호인 왕릉은 자연바위로 만들었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동서남북으로 물길을 만들어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길은 대왕암 안쪽을 향상 잔잔하게 유지해 주는 장치입니다. 수면 아래에는 남북으로 길게 놓인 거북 모양의 넓적한 돌이 덮여 있는데 이 아래에 문무왕이 잠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어느 왕도 실행하지 못한 화장장례와 유해를 바다에 수장하도록 한 문무왕의 결단은 동서양의 역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문무왕은 그렇게 해서라도 나라를 지키려던 자신의 호국의지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3. 경순왕릉, 원성왕릉
경기도 연천에 가면 사적 제244호로 지정된 경순왕의 무덤이 있습니다. 신라의 왕인데 왜 무덤이 경기도에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경순왕은 신라의 마지막 임금으로 신라의 국력이 많이 약해져 있던 후삼국 시대에 재임한 왕으로 궁예, 왕건, 견훤과 같은 호족들의 세력이 커져 나라가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결국 고려를 세운 왕건에게 나라를 바치게 되고 신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왕건의 딸과 결혼하여 관직을 얻어 개성에서 생활하다 죽게 되는데 옛 신라 백성들의 혼란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에 경주로 가지 못하고 개성에서 가까운 연천에 묻히게 됩니다. 경순왕릉은 한 나라의 왕이었다고 하기엔 조금은 초라한 모습이지만 왕의 무덤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구조물들은 갖추고 있습니다. 원성왕릉은 신라 제38대 원성왕의 무덤으로 괘릉으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무덤을 만들 때 물이 괴어 널을 걸어 묻었다고 해서 괘릉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거의 평지로 되어 있으며 오래된 소나무가 능 주변을 감싸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신라의 왕릉 가운데 능묘의 조각을 잘 갖추고 있는데 십이지신상이 돋을새김으로 되어 있으며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 정교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봉분으로 가기 전 좌우에 있는 문인석과 무인석, 돌사자 등 석상과 석주 등이 있는데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남쪽부터 능역을 표시하는 돌기둥이 있고 문인상, 무인상 1쌍, 돌사자 4마리가 놓여 있는데 이러한 구성은 원성왕릉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특히 무인상의 모습이 특이한데 이국적인 외모로 깊은 눈, 넓은 코, 숱이 많은 수염 등 서역인(페르시아 인)의 모습이 당시 신라가 국제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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